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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변화

Serio 2017. 6. 15. 20:06

I. 옛 관념

 

어떤 나라에서 실업률 수치가 높다는 것은 그 나라 경기가 후퇴중이고, 시민들의 경제적 기반이 붕괴중이며,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는 근거로 쓰인다.. 예를 들어 에스파냐의 경제 상황에 대해 들어본 적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 하여도 청년 실업률이 45%를 왔다갔다 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 나라 경제가 매우 악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추정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 한국의 경제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실제로 고용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고 수 많은 구직자들은 사실상 구직을 포기하거나, 공무원 시험에 도전중이다.

 

이는 분명히 문제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 논점은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도대체 어떤 방법에 의할 것인지다. 그 방법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19세기의 낡은 관념을 들고온다. 즉, 자본이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대함으로 인해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을 받고 해고의 위협 앞에 취약한 비참한 처지에 놓였으며, 부유층들은 이같은 갑을관계를 통하여 노동자를 착취함으로 자신들의 부를 유지한다는 관념이 이에 해당한다.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산업혁명 초기 기간 동안 이 문제를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들 역시 문제를 인식하고 각자의 대안을 내놓았다. 당대인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과격하게 두 가지 방식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궁극적으로 노동자들도 산업혁명의 혜택을 받게 될 것이므로 시간이 곧 궁극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 그 하나였고(대표적으로 아담 스미스가 여기에 속할 것이다), 직접적으로 노동권의 향상을 위해 노력하여 궁극적으로는 자본가들이 주도하는 이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주장이 그 둘이었다.

 

그러나 그 두 주장 중 현재까지 대부분의 국가는 전자의 방향을 통해 해법에 도달하였다. 오늘날 많은 선진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노동에 대한 많은 사항들이 법으로 쓰여져 보장되고 있다. 일정일 이상 근무하면 얼마의 휴가를 줘야한다던가, 출산이나 육아휴직은 얼마나 보장해줘야한다던가, 통상임금은 어떻게 산출해야 한다던가. 이런 규제들은 결국 자본주의를 엎음으로서 가능했던게 아니라, 자본주의를 발전시킴으로서 가능했다.

 

II. 20세기 후반의 변화와 그 해석

 

그러나 시대는 변합니다. 여기서는 그 변화의 양상에 대해 간략하게만 요약하고자 합니다. 대전직후 약 2-30년간은 옛 관념의 방식으로도 일단은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취업은 어렵지 않았고, 소득은 균등했죠. 사람들은 더욱 부유해져갔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대를 일컬어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라고 부르기도 했죠. 문제는 그 뒤였습니다. 그 변화의 대략적인 모습은 다들 아실겁니다. 문제는 그 해석이었죠. 많은 사람들은 이 시대의 변화를 일컬어 신자유주의라고 불렀고, 그 전 황금시대가 자본과 노동의 대타협이었다면, 신자유주의 시대는 자본의 역습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관점은 결국 전 항목에서 설명한 ‘옛 관념’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은 그 분석이 맞다고 생각되어왔죠. 그렇지만 그 관점은 과연 옳은거였을까요? 제 생각엔 아닙니다. 이 관점은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기에 나온 분석이지 변화를 이해했기에 나온 분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970년대는 자본주의가 다시 새로운 단계로 변화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 시대는 자본의 반격으로 인한 1920년대 도금시대로의 회귀가 아니고, 그 이전 산업혁명의 여명기로 돌아가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궁극적으론 기술과 산업의 발전과 변화였단 것입니다.

 

왜 1970년대부터 중간관리자 이하급 노동자의 임금상승이 억제되었는가. 왜 1970년대부터 임금격차가 심해졌는가. 그 근본적인 해답은 결국 재화창출입니다. 1970년대 이후부터 일반 노동자의 재화창출능력은 거의 상승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들 개인의 잘못도 아니고 그들이 배움에 게을러서도 아닙니다. 시대의 변화 때문이었죠. 1970년대 이전부터 기업들의 재화생산능력은 약화되었고, 이는 경영혁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기업들은 기술발전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사무를 자동화했습니다. 20세기가 넘어가는 시점에 이르면 노동자들은 더 이상 기술혁신을 따라가지도 못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스마트폰을 생산하는데 평범한 노무자 100명이 더 낫겠습니까, 기술자 한명이 더 낫겠습니까?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제품생산 뿐 아니라, 기업경영 그 자체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경영은 이전시대보다 훨씬 고도화되고 있고, 이전시대처럼 노동자가 경영에 참가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입니다. 스웨덴 같은 곳은 재벌경제면서도 노동자가 경영에 참가할 수 있는 대타협을 이뤄냈죠. 그러나 그 스웨덴도 수 십년 내에 이같은 방침을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임은 명백합니다. 경영학엔 고도의 수학이 도입되었으며, 이제는 콜센터에 몇명의 직원을 투입하는것이 소비자만족과 지출비용 사이에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조차 기계적으로 계산이 가능해질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일반 사원으로 입사한 사람이 임원이 되는 일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으며, 처음부터 전문적으로 경영학을 학습한 고급인재들이 즉시 관리자나 임원급으로 임명되는 경향은 선진국에서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 당장 현 애플 CEO인 팀 쿡의 경영능력을 보세요. 이 사람 하나의 비범한 재고관리능력이 애플에 안긴 이익을 고려하면 일반 노동자의 가치가 왜 기업에서 별 의미가 없는질 감각적으로 알 수 있게 합니다. CEO를 비롯한 경영자들이 막대한 봉급을 받고 임금격차가 날로 벌어지는건 무슨 자본의 약탈 때문도, 노동자가 착취당해서도 아니고 그저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이고 이윤극대화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 이 임금격차는 그것이 재화창출능력을 최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말입니다.

 

지금도 이같은 혁신이 적용되지 못한 분야의 공장에서는 노동자들이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분야에서는 노동자는 더 이상 필요가 없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에게 있어서 노동자들은 생산요소의 하나에 불과하고, 만약 노동을 다른 요소로 대체할 수 있으며 그것이 더 유리하다면 당연히 대체하려 할 뿐입니다. 반대로 노동이란 요소가 더 유리하다면, 연봉을 두 배 세 배를 준들 못 쓰겠습니까? 결국 노동시장의 문제는 수요입니다. 독일 자동차회사들은 이미 사람 하나 없이 대규모 자동차 생산이 가능한 무인공장들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요 수 년간 중국이 아닌, 미국이나 독일같은 선진국에 세워진 공장들은 대부분 이같은 무인공장입니다. 더 이상 노동자를 고용할 필요가 없으니, 인건비가 비싼 북미와 유럽에 공장을 짓는것도 큰 부담이 아니게 된거죠.

 

과거엔 이렇지 않았습니다. 기계가 사람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관점은 러다이트 시절부터 있었지만, 실 통계자료들은 결국 총 고용률에 큰 변화가 없었음을 보여줬죠. 한 쪽 산업에서 기술혁신이 발생하여 노동수요가 감소하여도 타 분야에서 충분히 잉여인력을 흡수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아주 납득이 되고 눈에 띄는 예를 들면, 농부 비율은 지난 수 백년을 거쳐 인구의 80% 이상에서 1-3% 정도로 떨어졌지만, 그걸 이유로 실업률이 올라가진 않았던 것과도 같다는 말입니다. 결국 개별 분야에서 노동수요가 줄어들지언정, 실업률이 증가하지는 않고 국민 개인들의 삶의 질은 평균적으로 증가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흔히 말하는 고용 없는 성장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건 한국만의 현상이 아닌, 세계 모든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생하고 있는 현상입니다. 한국만이 실업이 심하다면, 그건 한국이 문제인거고 해외 제도를 배끼고 국내 환경을 해외처럼 최대한 조정하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죠.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이건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옛 관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노동권이라는건 결국 생산에 참여할 권리입니다. 왜 생산에 참여하는 것을 권리로 부여했냐면, 생산에 참여함으로서 그 부를 분배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생산에 인간이 필요없다면 어떨까요? 노동권은 그 순간 모든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제 우리는 실업을 해결할 대상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에 도달했단 겁니다.

 

III. 새로운 해법을 위해

 

각국 정부와 정치권들에서도 이제 문제의 본질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알파GO의 등장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변화의 바람을 느끼게 했죠. 대자본의 압박이니 뭐니 하는게 문제가 아니라, 지금 전세계 자본주의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변화 말입니다. 옛 관념이 현재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바로 생산과 분배의 문제라는 관점이죠. 생산에 사람이 참여하지 못하게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그 재화를 분배해야 할 것인가?

 

과거 노동법이 작동을 할 수 있던건 단순히 해당 법조문이 존재했기 때문이 아닙니다.법조문이 구속력있게 사회에 적용될 수 있다면 그건 실제로 사회경제적 환경과 법이 충분히 일치하여 공명하고 있었다는 의미지 법이 사회를 맘대로 규율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법을 어떻게 만들건, 아래엔 대책이 있습니다. 법이 있고 벌이 강력하다는 이유만으로 기업들이 법을 지키지는 않습니다. 아니, 기업들은 언제나 최후의 대책이 있지요. 그들은 언제든 자산을 현금화하고 철수하면 그만입니다. 자본없이는 고용도 없습니다. 정부는 과거의 방식에 따라 자본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여담인데, OECD 보고서를 비롯하여 이쪽 분야 전문가들은 대부분 한국의 노동법이 지나치게 경직되어있고 노동자들을 과보호하여고 하고 있습니다. 투자를 왜 안하는가. 노동법이 너무 빡세서죠. 정규직을 왜 안뽑는가. 노동법이 너무 강해서죠. 노동법이 왜 안지켜지는가. 현실성이 없어서-_-입니다. 많은 분들이 이 말을 불편해할거란건 압니다만 이건 진짜-_-;; 이건 사실이 맞습니다. 친자본이라서도 아니고 친기업이라서도 아니고 정말 이게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노동법이 약하다고 주장하시는 분들은 노동법을 한번 공부해보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생각보다 훨씬 빡세게 되어있습니다-_-;; 오늘날 투자가 약해진 이유 중엔 분명히 노동법의 영향력이 있고, 이는 생각보다 훨씬 큽니다.)

 

청년실업을 해소하겠다고 정부가 뭔 수를 쓰던, 이건 해소되지 않습니다. 공무원을 늘이는게 고작이겠죠. 하지만 공무원은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OECD평균치를 들어 한국의 공무원 비중이 높지 않다고 하던데, 어느정도는 올바른 지적입니다만(직렬이나 근무처에 따라 다른데, 이를테면 대부분의 사회복지직은 진짜 공무원들이 개고생하죠;;) 아주 올바른 지적은 또 아닙니다. 소득수준을 고려한다면 한국 공무원 비중이 지나치게 낮다는 주장의 신빙성이 떨어지죠. 더군다나 공무원의 근본 목적은 공공서비스의 제공이지 실업난의 해소가 아닙니다. 실업난을 해소하겠다고 필요하지도 않은 공무원을 늘려버리면 그건 그냥 옛 공산주의로의 회귀나 다름없게됩니다. 더군다나 한국의 공무원 인력들은 이미 대규모로 증원이 수 차례 이루어졌고, 이에 더해서 공직사회의 효율성도 크게 상승한지 오랩니다. 이제는 주민센터에서 서류를 떼는데도 사람이 필요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냥 자판기에 지문인식하고 원하는 서류를 선택하면 서류가 발급되거든요. 동전만 넣으면 된단 말입니다. 이제는 주민센터까지 갈 필요도 없이, 지하철 역에도 자판기가 배치되어있어 공공서류를 뗄 수 있을 지경입니다. 공무원 비율이 그리 높다는 유럽 선진국들 가보세요. 다른건 몰라도 행정효율만큼은 시궁창입니다. 기업들은 변화가 나름 빠르지만, 거기 관공서 일처리 수준 보면 답이 안나오는게 대부분입니다. 이렇게 효율이 떨어져서 공무원이 많은거지, 공무원이 많아야 되서 많은게 아니란 말입니다.

 

이젠 더 이상 노동을 통한 분배 외의 다른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답인가? 솔직히 말해 이에 대해선 말할 수 있는게 별로 없습니다. 다만 최근에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볼 만한게 기본소득제 같은 논의들입니다. 즉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그 자체만으로 (생산에 기여를 못하더라도) 재화를 분배받을 권리가 있다는 관점에서 보자는 것입니다. 김종인씨도 이 분야에 대해 관심이 있던데(전 이 양반이의 정책 중에 의문이 꽤 있습니다만, 변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적어도 다른 정치인보다 우월함은 인정해야 한다 봅니다. 김종인씨가 20세기의 인물이란게 놀랍네요) 이 제도를 어떻게 현실에 맞춰 실현할 것인가를 깊게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당장 모든 국민에게 월 500만씩 주자 이런건 지금으로선 실현불가능한 헛소리죠. 또한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인류 자체의 생산능력이 불필요한 수준까지 빠지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분명히 시작되었습니다.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고,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한세기 반 전 반동좌파들의 헛소리는 좀 가져다버리고(150년이 짧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지만, 당장 우리나라가 그 시대면 조선시댑니다. 10년 전에 핸폰 뭐 썼는지 기억나세요?;;), 새로운 시대에 맞춘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필요는 명백합니다.

 

답을 내려면, 문제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태까지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을 보면서도 뭐가 문제인지를 몰랐고, 잘못된 해석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려 했죠.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습니다. 이젠 문제를 재설정할 때가 왔지요. 그리고 문제가 바뀌었다면 답도 바뀌어야 합니다. 이제 곧 혁신은 일반 노동자 뿐 아닌, 전문직 노동자들과 경영층까지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계적으로 현 시대의 변화에 발맞처 반 발짝 정도를 뒤따라가는 수준으로 제도를 정비하도록 대비해야 합니다.

 

현실문제의 해결은 현실인식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올바른 해답은 올바른 문제설정으로만 가능합니다.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이자 모든 문제해결의 시작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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