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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작성한 여러 글을 합치고 발전시켜 공교육 폐지론이란 이름으로 나무위키에 업로드한 적이 있다. 그 뒤로 여러 좋은 편집자들의 기여와 그에 대한 피드백을 거쳐 문서 내용이 더 좋아졌다. 다만 문서가 많이 완성도 되어 특별히 손댈 곳이 보이지 않고, 또 위키 문서에 한 개인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지는 것도 좋지 않아보여 현재로서는 더 이상의 편집은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쓰는 내용은 문서로 적기는 다소 어려운 몇 부분에 대한 것이다.

 

1. 배경 및 과정

 

 본래 해당 문서의 시작은 한국의 교육체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인식 하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관련 내용들을 조사할 때 마다 느낀 것이, 사회 구성원 다수가 문제가 있다는 인식 자체는 공유하면서도 대체 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제 자체가 통일되어있지 않았었다. 기존의 문제의식들은 상당한 부분에서 필자가 보기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필자는 기존의 대안 외에 타국의 사례들을 참조하고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같이 찾아봐야 했다. 필자가 문서 첫머리에 기재한 문장("교육은 인적자원의 생산이고 평가는 그 분배(Distribution)이며 연구는 지식자원의 생산이다.")은 사실 문서를 거의 다 완성하고 최종적으로 내린 결론이며, 문서 전체에 대한 요약이기도 하다. 즉, 해당 문서는 연역적으로 작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사회현상 및 변화와 각종 의견들을 종합하여 작성된 것이다. 필자가 한 것은 다만 그 내용들을 일관된 관점으로 묶은 것에 불과하다.

 

 이 첫 문장의 선언이 얼마나 문서의 핵심을 쉽게 설명하는지를 이야기해보자.

 

 첫 번째로, 교육이 인적자원의 생산이라는 주장은 교육에 대한 온정주의(이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달리 쓸 말이 없으므로 이렇게 적는다)적 관점을 배격한다. 즉 교육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시킨다거나 삶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한다거나 하는 관점이 여기에 해당한다. 물론 이 내용을 굳이 노골적으로 적어 독자의 불쾌함을 이끌어낼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드문드문 녹여놓기만 하였다. 해당 문서에 어떤 사용자가 경제학 전공자의 관점으로 작성된 문서로 추정된다고 주장한(그리고, 아마도 그 점에서 한계를 보인다고 말하려 했을) 이유가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해당 선언은 기존의 다른 대안들도 배격한다. 인성교육론이나 창의력교육론, 사회적 지위 재분배론 등은 교육의 목적과는 무관하며 교육의 논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술하였듯 필자로서는 기존의 대안들이 주장하는 문제의식과 그 해결법에 전혀 동감을 할 수 없었는데, 이는 취합된 내용에 반하기 때문이었다. 계속하여 조사를 해본 결과 필자는 그들이 주장하는 대안이 시행되어봐야 오히려 그냥 놔두는것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다. 해당 문서의 전반부에 기존의 대안들이 어떤 문제의식을 가졌는지와 그 해결법으로 무엇을 내놓았는지를 요약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두 번째로, 평가는 인적자원의 분배라는 선언은 역시 평가에 관한 각종 타 주장들을 배격한다. 이 선언은 수능이나 각종의 자격증이나 전문직 시험의 존재의의가 무엇이고 그것이 사회에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밝힌다. 나아가 이 선언은 대학의 목적이 진리의 탐구라는 주장을 배격할 뿐 아니라, 대입제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사회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본질을 밝힌다.

 누군가는 대학이 취업 사관학교가 되는 것이 잘못이라고 하고, 대학은 공부하는 곳이지 취업하는 곳이 아님을 주장한 바가 있다. 그런 주장대로라면 대학이 취업시장에서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현실을 설명할 수 없다. 대졸자와 고졸자 사이에, 또는 명문대와 비명문대 간에 차이가 없다면 뭐하러 학생들이 대학입시에 매달린단 말인가? 진리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그런 사람도 물론 있을 것이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이 둘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한다. 필자는 교육과 평가의 양면을 묶어 인적자원정책으로 불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육부의 역할은 고용노동부의 그것과 합쳐져야 한다. 이 둘은 멀리 동 떨어진 것 처럼 생각되었지만 실은 현대국가에서는 매우 밀접하게 묶여서 운용되어야 한다. 취미는 이 정책의 대상이 아니며, 오로지 산업에 투입될 수 있는 인적자원의 생산과 분배만이 정책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관점은 비인간적인게 아니라, 매우 인간적인 관점이다. 모든 인간은 근본적으로 먹고 자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적자원의 최적분배가 달성된다는 것은 희소한 자원이 효율적으로 분배되어 더 많은 인간의 갈망을 충족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더 효과적이고 더 효율적인것은 곧 더 도덕적인 것이며 따라서 이 관점 하에 수행되는 정책이 가장 정의로운 정책이다.

 

 이상의 이유로 본래 해당 문서의 원제는 인적자원정책론이었으나, 다만 이런 배경설명까지 일일이 제시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공교육 폐지론이라는 제목을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조금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해당 문서의 내용 중 공교육 폐지에 관한 부분은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눈치챌 것인데, 본 글에서 설명하였듯 애초에 공교육을 폐지하자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성한 문서가 아니기 떄문이다. 공교육의 폐지는 그저 취합의 결과에 따라 도출된 자연스러운 결론이었을 뿐이다.

 

2. 비판에 대한 응답

 

 이 역시 본래라면 문서에 작성하여야 할 것이나, 문서의 내용은 대체적으로 완성이 되어있고 또 위키의 특성상 다른 사람의 의견을 (명백하게 잘못된게 아니라면) 굳이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지 않아 문서는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필자의 주장은 다 적어놓았고 비판에 대해 다른 의견을 쓴다고 해 봐야 이미 적은 주장의 반복이 될 것이기 떄문이다. 다만 본 글에서 일부를 답하기로 한다.

 

 먼저, 유소년기의 교육과 자격시험용 교육이 다르다는 주장에 대한 필자의 응답은 이렇다. 필자 개인적으론 유소년용 교육이 정히 필요하다면 현행 초등학교 내용을 대체적으로 유지하되, 불필요한 몇몇 과목(특히 미술과 음악, 체육 등)을 제하고 학습법을 대신 채우자는 입장이다. 실제로 해당 문서에서 필자의 주장은 중등교육과정 이후를 모두 민간으로 넘긴다고 했을 뿐, 초등교육은 놔둔다고 전제하고 있다.

 이는 초등학교의 다른 기능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필자는 학교에서 진행되는 유소년기 교육의 효과를 거의 믿지 않기 때문에 그 효과를 별로 기대하지 않지만, 대신 초등학교가 수행할 수 있는 다른 여러 기능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초등학교는 정부의 인구 파악에 도움이 된다. 입학적령기가 되서야 실종여부가 확인된 아이들이 많다. 만약 초등학교가 없었다면 이렇게 실종된 아이들은 그대로 사회에서 소리소문 없이 묻혔을 것이다.

 또한 초등학교는 학생들의 보육을 보조할 수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맞벌이가 증가하는 현대 사회에서 아이들을 맡아줄 기관의 필요성은 절실하다. 그런데 어린이집에 대한 정부나 지자체 예산 투입 관련 논란 에서 보듯, 이 문제를 기존의 방식으로 대처하는덴 한계가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굳이 어린이집이나 탁아소를 별도로 운영할 것 없이, 차라리 초등학교를 기능적·공간적으로 확장하여 이 역할을 함께 맡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 초등학교는 당연히 아이들의 건강검진과 영양공급에도 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다.

 

 다음 주제로, 해당 비판에서 언급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진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갖고 있었다"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인데, 진로에 대한 비전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직업에 대한 것이라면 명백히 잘못된 소리다. 그 비전이라는게 흐릿한 수준의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업을 얻겠다'는 수준이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상위권 대학에서도 학생들이 딱히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 처음부터 고시를 치거나 로스쿨을 가거나 전문직 시험을 보겠다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얼마 되지 않으며, 몇번 해당 시험을 보는 사람들도 대부분은 탈락하여 일반 취업시장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직업에 대한 확고한 비전이 정말 있다면 좋은 학벌이 필요하지도 않다. 로스쿨을 제외하면 대입 수준에서 생각해볼 만한 '확고한' 직업은 4년동안 대학을 다니는게 시간낭비다.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진로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저 멀리 구름 위의 봉우리를 향하는게 아니라, 그냥 눈 앞의 일들을 잘 처리하고 꾸준히 하는 능력을 가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당장 눈 앞의 공부를 어찌되었건 열심히 하는 것이고 하루하루의 습관이 쌓여 좋은 대학으로의 길이 열리는 것이다. 물론 이 능력은 이후 정말로 비전을 가지고 전문직 시험 등을 공부할 때도 도움이 되긴 하지만, 좋은 학벌 그 자체가 확고한 비전이라면 모를까 대입 과정부터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졌다고 주장하는건 상당히 현실과 동떨어진 주장이다.

 

 가정내의 정신적 혹은 문화적 자산 차이가 있다는 지적에 대한 답은 이러하다. 부모의 영향력에 의한 격차는 10대 후반, 늦어도 20대 초반에 극대화된다. 아무리 흙수저라 부모로부터 받은게 없다고 해도 20대 중후반에 이른다면 인간관계도 어느 정도 쌓아봤을 것이고 자신의 인생관도 정립되었을 것이다(그 나이에 이르러서도 자신의 인생관을 분명히 가지지 못하고 계속하여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다면 그건 부모의 문제도 아니다.). 문서에서 제시된 학력인증제와 같은 대안이 도입되면 그 나이에 이르러서도 자신이 생각한 바에 따라 다시 커리어를 쌓아나갈 수 있다.

 진로상담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데, 그런게 도움이 되는 사례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뭘 할 지 무엇을 하고 싶을지는 상담을 통해 결정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어느 분야를 많이 접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상담을 할 게 아니라 정보 부재를 해소하는게 전부다. 필자는 문서 중반에 정부주도의 사이트를 제작할 것을 이야기했는데, 그 사이트에서 각종 직업에 대한 설명을 적고 실제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홍보용 동영상을 제작해달라고 하면 된다. 더하여 직업별 게시판 등에서 정보를 나누게 하면된다. 이미 다음카페나 네이버카페 등의 커뮤니티에 보면 해당 분야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검색 한번 하면 들어갈 수 있다. 신제도에서의 차이는 '검색을 하지 않아도' 해당 정보의 존재를 인지하게 하는 것이다.

 

 한편 본 절의 제목을 비판에 대한 반론이 아니라 응답으로 굳이 지은 이유는, 사실 비판을 다 받아들여도 별 문제는 없기 때문이다. 비판론에서 주장한 것 같이 중등교육은 놔두고 고등교육(대학)만 폐지해도 딱히 큰 문제는 없다. 본래 이전 글들을 참조하면 알겠지만 필자가 우선 폐지하자고 한 것은 학부 교육이었다. 이후 해당 논지를 확장하여 중등교육을 포함해 제거하자고 했을 뿐이다. 이 고등교육의 사교육화만 이뤄져도 한국 교육의 주요 문제는 거진 다 해결된다.

 비판론에서 주장한 다른 주장들도 그게 정말 필요하다면 다 받아들일 수 있다. 유소년용 교육이 정말 필요하다면 초등학교에서 시행하면 그만이다. 진로상담 프로그램도 개인적으로 필요성에 회의감이 들지만 굳이 하겠다면 못할 것 없이 필자가 주장한 신제도와 조화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해당 문서의 핵심은 고등교육 폐지와 학력인증제에 있다고 보기 때문에 아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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